안녕하세요. 7년차 안드로이드 개발자입니다.
저 같은 게 벌써 만 6년을 넘게 안드로이드 개발자로 버티고 있다고 합니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달력을 확인해봤는데, 개발자로 월급을 받은 지도 정말 만 6년이 넘었다고 하네요. 작년까지는 회고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제가 쓰는 건 1년에 한 번 몰아서 쓰는 개발자의 일기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올해부터는 그냥 개발자의 일기입니다.
요새는 이야기를 할 친구도 많이 줄어서 “나 벌써 7년 차야~” 하고 떠들고 다닐 일도 별로 없습니다. 회사에서는 제 연차가 쌓이는 만큼 같이 일하는 동료분들의 연차도 함께 쌓이니, 늙어간다는 게 체감이 좀 덜되고... 그러다 보니 그냥저냥 평범하게 살고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AI를 쓰는 테무인간
1년간 개발은 거의 안했습니다. 정확히는 안드로이드 프로젝트를 회사에서 거의 손대지 않았죠. 개인 프로젝트도 웹이나 플러터 등을 쓰다 보니 코틀린을 위시한 안드로이드 프로젝트에는 손 댈 일이 없었네요. 아무래도 미숙한 프레임워크나 언어를 쓰다 보니 AI 의존도가 많이 올라갔습니다.
그래서 회사에서는 안드로이드 개발자로서 업무를 해야 할 텐데 안드로이드 프로젝트를 건드리지 않았다면 뭘 했을까요? 요즘은 UI 테스트와 유닛 테스트 자동화, AI 리뷰 자동화, CI/CD 자동화 업데이트, UX RAG 청크 저장을 위한 분석 파일 생성 등 회사 내부의 리소스를 절약할 수 있는 부분들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웹페이지 만들 일도 늘어나고 DB나 서버 구축에 공을 들이고 있는데, 이참에 다른 것들을 조금씩 찍먹해서 적당히 홀로서기를 시작해야 하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저도 꽤 열심히 연구하면서 AI를 쓴다고 생각하는데 진짜 잘 쓰는 사람들을 보면 생산성의 격이 다릅니다. AI를 잘 쓴다는 정도로는 명함도 내밀기 어렵고, 그렇다고 안드로이드 개발자로 극의에 도달하자니 제 머리가 상위 1%는 아닌 것 같습니다. 결국 다른 사람들의 창의적인 개발 방식에 놀라서 리액션해주는 봇 1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이제 젠킨스를 어떻게 사용해야 할 지, 서버를 자동화 배포 하려면 어떤 기능이 있는지(구현하라고 하면 좀 걸리지만), AWS Bedrock 같은 외부 클라우드 AI 를 통해서 PR 자동화 리뷰를 할 때 어떤 방식으로 진행해야 효율적인지 등에 대해서는 조금씩 식견을 넓혀나가고 있습니다. 웹페이지는 아무래도 디자인 감각조차 없는 제 개발자 이슈로 인해 AI에게 거의 맡기는 편이지만 최소한 어떤 기능이 필요하고, 어떤 기능을 어떤 방식으로 구현했으면 좋겠다 까지는 AI에게 요구해볼 수 있네요.
그리고 이 과정에서 별로 쓸모는 없지만 묘하게 기억에 남는 사실도 하나 알게 됐습니다. 기획서(라고 말하긴 부끄러운 수준의...)를 AI가 읽어서 자동으로 코드 설계서를 작성하게끔 하는 기능을 구현하다보니, 클로드가 클로드 비전을 통해 PDF를 읽는 것과 PPT를 읽는 것 중 PDF를 읽을 때가 토큰을 덜 소모하지만 PPT를 읽을 때 좀 더 정확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어디로 가야 할까요?
개발을 직접 하는 일이 드물어지다 보니, 안드로이드는 여전히 직접 코드를 짜는 데 큰 어려움이 없지만 공부를 별로 하지 않은 Flutter, FastAPI, Spring Boot, JavaScript 같은 기술은 AI 없이 작업하기가 쉽지 않아졌습니다. 덕분에 AI 시대가 참 좋다는 생각도 들지만, 앞으로 개발자는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은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친구들끼리는 우스갯소리로 “AI가 개발자보다 비싸지는 순간이 오면 그때 다시 개발자의 시대다”라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 AI 가격을 보면 개발자 연봉보다 비싸지는 날은 쉽게 오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런 분위기를 가장 절절하게 체감하는 곳은 가끔 구경하러 들어가는 채용 사이트입니다. 안드로이드 개발자다 보니 당연히 채용 사이트에서도 안드로이드를 검색해서 보는데, 원티드, 사람인, 그룹바이 등등... 여러 군데를 돌아봐도 안드로이드(Kotlin) 네이티브 개발자를 뽑는 공고가 많이 없더라구요. 플러터나 RN이 유행하던 시기에도 네이티브 개발자는 꾸준히 뽑았던 것 같은데 얼마나 채용 공고가 없으면 안드로이드 개발자로 검색해도 스크롤을 조금만 내리면 바로 백엔드 개발자, 프론트엔드 개발자, RN, Flutter 개발자만 남습니다. 처음에는 왜 안드로이드만 검색했는데 자꾸 저런 친구들이 추천 공고로 뜰까 싶어 검색 기능 탓을 했었는데, AI를 통해 공고를 끌어모아 보니 저렇게 쓸데없는 공고라도 보여주지 않으면 스크롤조차 내려가지 않을 정도로 공고가 많이 죽었더라구요. 이제 안드로이드 하나만 품고 살아온 개발자는 갈 곳이 점점 줄어드는 신세가 된 것 같습니다.
뭔가 잘못됐어 단단히
어느새 제 유일한 장점은 회사에서 이것저것 해보자고 주장한 뒤, AI가 싸준 PPT를 들고 사람들을 모아 발표하면 설득력이 제법 좋다는 것뿐이 됐습니다(은퇴 나이를 빠르게 잡고 있었는데, 그것보다 더 빠르게 다가오는 중일지도...)! 지금 회사에서도 제가 열심히 이것저것 해보자고 기획해서 들고 다니면 다른 사람들이 그거 주워다가 일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PPT만 만들고 대부분의 업무가 끝나버리고 있죠. 가끔은 제가 기획자로 전직할 기회를 어느샌가 놓쳐버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예전에는 개발자가 코드를 많이 짜지 않으면 일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고 지금도 가끔 그런데요. 하지만 제가 만든 자료를 보고 누군가가 실제 일을 시작하고, 제가 던진 아이디어가 팀의 업무가 되는 걸 보면 이것도 일은 일인 것 같습니다. 다만 제 GitHub 잔디는 이 사실을 인정해주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추후 이직할 때 써먹을 아이디어가 될 것 같지도 않네요. 혹시나 홀로서기를 한다면 그때는 이러한 내용이 경험이 되어 저를 이끌어 줄 수도 있겠죠...?
하고 싶은 게 많이 있어요
슬슬 회사에 3년하고도 반년을 더 지내고 있으니 회사에서 제가 할 만한 일들은 다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정확히는 하고 싶은 건 더 있고 이 회사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일도 더 있을 것 같은데, 위에서는 그닥 반기지 않는 것 같습니다(AI가 창궐하기 전에 어떻게든 기술 블로그를 오픈했었어야 했는데 ㅠㅠ!).
그래서 요새는 2가지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저는 아이디어를 던지고 그게 거부당하는 걸 그닥 불편해하지 않는 장점이 있기 때문에 소규모 회사에 들어가서 이것저것 던져보고 깨져보면서 제 스스로 뭔가 도움이 되는 일들을 하는 것이랑, 아예 다른 직업을 찾아보는 것 입니다. 개발자라는 직업은 좋았습니다. 다만 AI가 발전하는 속도를 따라가는 일도 버거운데, 주변에서 자꾸 AI한테 가장 먼저 대체된다는데 뭐 먹고 살래~ 같은 소리를 듣는 것도 좀 지쳤다고나 할까요. 개발자들끼리 심도있게 우리의 미래가 어쩌구 하는 내용은 괜찮은데, 자꾸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니 미래가 어쩌구 하는 건 좀 불편하더라구요(지 직업은 개발자가 AI 한테 대체되었을때 살아있나보지? 흥). 농담이구요. 그냥 AI로 하는 개발에 흥미가 좀 떨어져서 더 재밌는 걸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어릴적부터 급하게 살아왔던 터라 제 나이가 30대를 넘어섰을 때 이제 새로운 걸 시작하기엔 늦은 나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가득했었는데, 주변에 서른이 넘어 첫 직장을 갖거나 아직 자신만의 길을 찾기 위해 돈은 벌어보지 못했지만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들을 보면 지금 제가 새로운 출발을 해도 괜찮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제가 새로운 길을 찾는다면 모두가 치열하게 사는 시대에, 저는 그냥 조금 돌아온 것 뿐인거죠.
하지만 기왕이면 개발자로 좀 더 돈되고 쓸모 있고 자랑할만한 삶을 살고 싶은게 큽니다! 그래서 회사도 기회가 된다면 작더라도 제가 열심히 하면 될만한 회사를 찾아서 가보고 싶다는 생각은 해요(월급이 많이 깎이겠죠...). 그리고 틈틈이 앱도 만들고 웹도 만들어서 광고 수익을 열심히....(5년간 10달러 벌었지만요 ㅋㅋㅋ)!
올해도 새로운 걸 하고 있죠
올해 가장 큰 새로운 일은 유튜브를 개설했다는 것입니다. 음악채널인데요. 직접 음악을 만드는 건 아니고, AI를 통해 만든 노래들을 조금 다듬고 이미지, 자막 등을 가공해서 유튜브에 내놓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노래가 쌓이면 비슷한 노래들을 플레이리스트로도 만들고 있죠. 저는 예전부터 음악을 무척 좋아했고 직접 만들어보고 싶어 했는데, 소질이 없어 혼자 가끔 어설프게 만들어 듣곤 했죠. 하지만 이제는 AI가 어마어마하게 잘해주니, 예전부터 하고 싶었던 일을 AI 핑계로 슬쩍 시작해본 겁니다.
하다보니 이 AI 뮤직도 개발자의 AI 툴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사용해본 범위를 기준으로 하는 말이지만, 기초적이고 익숙한 노래를 엄청 예쁘게 잘 만들어주는데, 획기적이고 창의적인 건 없습니다. 개발자에게도 AI는 그런 툴에 가깝죠. 이미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것들을 검색보다 빠르게 가져와서 적용시켜주는 도구. 그 덕에 기초도 없는 저는 AI로 음악을 만들어 어릴적 꿈을 이렇게나마 간접적으로 이루게 됐긴 했습니다. 돈이 많이 벌린다는 유튜브는 많이 봤는데, 제가 봤을 땐 플리로 버는 돈 보다 AI 사용법을 올리는 유튜버들이 돈을 더 많이 벌 거 같아요.
이 AI 음악 덕분에 깨달은 것은, 어떤 직업이든 AI가 침투하는 방식이나 사용법이 비슷할 것이라는 점입니다. AI는 누구나 일정 수준까지는 빠르게 올려주는 대신, 그다음 차이를 만드는 사람의 감각과 판단을 더 중요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기본적인 생산성이 높아질수록, 남는 시간과 도구를 어디에 쓰는지가 더 크게 드러나는 시대가 오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결국 모두의 기본 점수가 올라가면 결국 상위 1%가 더 무서워지는 세상이 오는 셈입니다. 저는 일단 그분들의 결과물을 보며 리액션을 잘하는 상위 1%를 노려보겠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O-ERErtv2po
제가 만든 노래입니다. 오신김에 듣고 가주세요. 이미지는 AI로 만들었고 아직 수준이 낮아 부끄럽지만, 자막도 비주얼라이저도 타이틀도 코딩해서 넣어봤습니다.
그래서 개발자는 어떻게 되는 걸까요
개발자 회고를 보러 오는 분들은 보통 어떤 사람일까요? 저는 예전에 다른 개발자들의 회고를 검색할 때면 주로 지금 제가 잘하고 있는지, 앞으로도 계속 이 일을 할 수 있을지 막막할 때였습니다. 제가 누군가에게 대단한 답을 줄 수 있는 사람은 아니지만, 비슷한 마음으로 여기까지 내려오신 분들에게 뭐라도 도움이 되고 싶어서 몇 줄 적어보려고 합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저도 개발자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AI가 개발자를 완전히 대체할지, 개발자의 생산성만 끌어올릴지, 아니면 개발자 한 명에게 다섯 명 몫의 일을 시키는 도구가 될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다만 개발자라는 직업이 사라지기 전에, 우리가 알고 있던 개발자의 모습부터 먼저 사라지고 있는 것 같기는 합니다.
예전에는 코드를 잘 짜고, 새로운 기술을 빠르게 익히고, 장애가 나면 원인을 찾아 해결하는 사람이 좋은 개발자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지금도 중요합니다. 그런데 요즘은 무엇을 만들어야 하는지 정하고, AI가 내놓은 결과가 맞는지 판단하고, 여러 사람에게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 설명하는 능력도 점점 중요해지는 것 같습니다. 제가 PPT만 만들고 일이 끝난다고 투덜거렸지만, 어쩌면 그것도 지금의 개발자에게 필요한 일 중 하나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제 GitHub 잔디는 인정하지 않겠지만요.
한 가지 기술을 깊게 파는 일이 의미 없어졌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AI가 그럴듯한 답을 너무 쉽게 내놓는 시대일수록, 그 답이 맞는지 알아보는 사람의 경험은 더 중요해질 것 같습니다. 문제는 저도 그 경험을 어디까지 쌓아야 하고, 동시에 얼마나 많은 분야를 알아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요즘은 완벽한 방향을 찾기보다, 일단 흥미가 생기는 것들을 하나씩 만들어보는 쪽을 택하고 있습니다.
안드로이드 개발을 계속할 수도 있고, 작은 회사에서 이것저것 벌이는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언젠가는 전혀 다른 직업을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내년의 제가 무엇을 하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무언가를 만들고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있을 것 같기는 합니다. 그게 앱일지, 자동화 도구일지, PPT일지, AI가 만든 노래일지는 모르겠습니다.
막막함을 느끼며 이 글을 읽고 있는 분이 있다면, 저도 똑같이 막막하다는 말 정도는 해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7년 차가 되면 모든 게 명확해질 줄 알았는데, 아는 게 늘어난 만큼 선택지도 늘어나서 오히려 더 모르겠어요. 그래도 지금까지의 경험상 정확한 길을 알아내고 출발한 적은 별로 없었습니다. 그래서 남들보다 늦고 돌아가서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개발자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앞으로도 개발자로 남고 싶다면 혹은 개발자가 되고 싶다면, 코드를 작성하는 사람에만 머물기보다는 문제를 발견하고, 도구를 고르고, 결과를 판단하고, 누군가를 설득해 실제로 움직이게 만드는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저도 그렇게 할 수 있을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일단 올해는 유튜브 조회수를 조금 늘리고, 5년 동안 10달러였던 광고 수익을 20달러로 만들어보겠습니다. 자그마치 두 배 성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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